1936년 태어난 정인지는 태종 14년 (1414년)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때 1등은 김작, 손미옥, 정인지등 3명이었다. 태종은 3명의 공동 1등의 답안지중 하나를 고르라고 명했으나 신하들은 이중 2개는 비슷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태종은 "내가 집는 것이 장원이다"라고 이야기하고 답안지를 잡았는데 그것이 정인지의 답안이었다고 한다.

장원으로 급제한 정인지는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으나, 업무처리 미숙으로 많은 문책을 당한다. 게다가 심각한 업무 실수로 의금부에 갖히고, 벼슬이 떨어진 적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세종 1년 정인지는 명나라로부터 세종 즉위를 승인하는 외교문서를 맞는 의식을 할때 황색의장을 빼놓았다가 의금부에 투옥된다. 이것은 외교사절을 접대하는데 상대국의 국기를 빼놓은 것과 같은 실수였으니 얼마나 일처리를 못했는가 알 수 있다.

비슷한 직급이었던 김종서는 탁월한 업무처리로 인정을 받았던과 달리 정인지는 업무처리에는 맞지 않아 일을 잘못하는 관리로 찍혔다고 한다. 그러나 학문쪽에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세종이 계속 그의 소질을 키워 주며 중용을 했다. 세종은 정인지에게 집현전에 배속 시켜 역사편찬쪽의 업무를 주로 맡겼다.

정인지는 계속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승진을 했는데 탁월한 김종서에 항상 밀리는 신세였다. 김종서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활이었다. 백성구휼, 6진 개척등의 어려운 일을 착착 해내어 김종서 예조판서, 정인지 형조판서 이후로는 계속 김종서는 정인지의 상관이었다. 정인지는 장원으로 급제하여 김종서 보다 초반에는 벼슬이 빨랐으나 후반으로 갈 수록 김종서에 말리는 상황으로 추후 계유정란때 김종서를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그때 세조로 부터 김종서 아들의 며드리와 딸을 하사받기도 한다. 입사시험에 1등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 꼴등으로 들어온 이가 부장이고 1등한 이가 과장인 것과 같으니, 정인지는 계속 컴플렉스에 시달리다가 나중에 김종서에게 처절하게 복수를 했는지 모른다.

실록에 따르면 정인지는 치부에 열중하여 수많은 재산을 축적하였고, 인근 땅을 확보하기 위해 백성들의 인가까지 빼앗았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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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역사적 내용을 보면 무인일 것 같은 태종 이방원은 천재였다. 
이방원은 만 16세인(1383년 우왕 9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것은 현재로 따지면 고등학생으로 행시 또는 사시를 패스한 것과 다름없다.
그때 급제한 동기는 심온 제거전 강상인과 함께 급제한 박습이 있다.

그리고 형제의 사랑도 깊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때 가족들은 모두 역적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때 이방원은 가족들,  방번과 방석을 말에 태워다니며 굶지않게  보살폈다고 한다.
그가 2차의 왕자의 난을 일으킨 방간을 죽이지 않고 귀향을 보낸 것을 보면 특별히 배다른 형제에 대한 미움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집현전은 세종의 작품이 아닌 태종의 작품이라고 한다.
태종 재위시 설립하려 했으나 다음 대의 왕이 후대에 평가를 받으라고 보류하고 있다가 세종 즉위 후 설립하라고 했다고 한다.

대왕세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종은 조직장악력이 탁월했으며, 전략적인 사고를 통해 차근 차근 목표를 실현하는 군주였으며, 동서양을 통털러 가장 명석한 왕이었던 것 같다.

태종 이방원이 이루어 놓은 기틀로 조선의 초석이 다져졌으며, 세종에서 부터 성종에 이르기 까지  안정된 사회체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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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태종은 세자의 초궁장 스캔들로 인한 하급관료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부정부패와 연루된 하륜을 벼슬에서 물러가게 한다.

그럼 이 시기 실제 어떠한 사건들이 발생했을까?

연대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414년(태종14년) 육조직계제 실시, 노비변정도감 설치
1415년(태종15년) 양녕대군과 초궁장의 스캔들이 기록됨         
1415년(태종15년) 민무휼, 민무회의 옥
세자인 양녕대군이 외삼촌인 민무휼과 민무회가 이전에 태종이 다른 두 외삼촌을 죽인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에 대해 고함. 이 고발을 통해 이듬해 1416년 민무휼과 민무회는 죽임을 당함.


1416년(태종16년) 하륜 사망. 처남 민무휼,민무회 제거
1416년(태종17년) 박은 우의정겸 수문관대제학에 오름
1416년(태종17년) 세자 양녕대군은 곽선의 첩 어리와의 스캔들을 일으킴. 이 사건으로 장인 김한로 사사

1417년(태종18년) 태종 선위파동으로 이숙번 탄핵, 양녕대군 폐세자,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줌

1418년(세종 1년) 심온 - 세종 즉위 후 사사

하륜이 물러가는 시점으로 민씨 형제들이 제거되고, 이숙번도 탄핵될 상황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어리와의 사랑으로 인해 왕의 자리까지 버렸다는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도 진행되는 직전에와 있다.
이러한 내용전개가 마무리 되면 세종에게 양위를 하고 세종의 외척인 심온을 제거하는 내용으로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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